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성 사건 (문단 편집) === 토비와의 협상 === 5월 7일 손미요는 관부에 인질을 보내 협상을 위한 3가지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 1. 군대를 파견하여 공격하지 말라. * 2. 산동건국자치군을 정규 관군으로 편성해 주고 1년 분의 식량을 제공하라. * 3. 군사공격이 시작되면 인질들을 전부 살해하겠다. 5월 8일 각국 공사단은 외교단 회의를 개최, 포르투갈 공사 프레타스를 대표로 임명해 국무총리 장소증에게 엄중히 항의, 외국인 인질들을 안전하게 구출하고 외국인 재산에 대한 안전보장을 요구했다. 5월 9일 외교차장이 인질들을 무사히 구출하고 나서 토비를 토벌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총통 [[리위안훙]]도 산동독군과 산동성장에게 대책을 강구할 것을 지시했다. 정부는 산동성의 신사인 당금원, 이병장에게 협상할 것을 지시하는 한편 임시판사처(瓣事處)를 설립하였다. 5월 12일 당금원과 이병장이 손미요를 만나 그들의 행동을 질책하면서 정부와 담판할 것을 권했다. 손미요와 곽기재는 승낙하면서 관군의 우선적 철수와 관향의 지급, 정식군대로의 편제와 병기 지급을, 톈중위 등의 면직을 요구했다. 5월 13일에는 미국인 앤더슨과 강소독군 [[치셰위안]]의 교섭원 온세진(溫世珍)이 손미주를 찾아 서양인들을 먼저 석방할 것을 제의했으나 손미요는 포독고를 포위하고 있는 관군을 백리 밖으로 철수시킬 것을 먼저 요구했다. 그리고 관군이 철수한다면 일부 인질을 석방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관군 철수 이후 자신들을 정규군으로 편제해주고 성의 표시로 무기를 지급해줄 것을 요구했다. 만약 이것까지 이루어진다면 다시 외국인 인질들을 석방하겠다고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대표를 파견해 관군 편제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편제가 완료되면 인질들을 모두 석방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표들은 동의하였다. 그런데 5월 14일 밤, 토비들은 자신들의 조건이 충분하지 못했다면서 관군이 완전철수하고 자신들의 정규군 편제와 통제범위에 대한 요구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지환 박사는 이것이 토비들이 정부가 군사행동을 취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그 기회를 틈타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5월 15일 교통총장 오육린은 육군검열사 [[펑위샹]]에게 토비들이 관군 3개 여단의 철수를 요구하는 한편 칭다오, 하남의 토비들을 모아 원병을 청하고 있다면서 시급히 해결되지 않으면 사태의 해결이 무기한 연기될 수 있다고 타전했다. 5월 20일에는 일부 토비들이 손미요와 합세하기 위해 관군과 교전을 벌이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